• 2023. 4. 12.

    by. 삼시기입니다

    종이달은 실화 사건을 바탕으로 쓰인 일본소설입니다. 일명 '시가은행 9억 엔 횡령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입니다. 일본에서도 영화 드라마로 제작되어서 큰 흥행을 한 작품인데 GENIE TV에서 ENA월화드라마로 리메이크되어 우리의 안방극장으로 옵니다. 원작의 배경을 알면 더 재미있는 시청이 되지 않을까 해서 이 사건에 대해 서술해 드립니다.

     

     

    종이달 포스터
    종이달 소설원작 일본 한국(왼쪽부터)

     

    시가은행 9억 엔 횡령사건이란

    1973년 10월 시가은행 야마시나지점의 은행원 오쿠무라 아키코(42세)가 횡령의 용의자로 체포되었습니다. 오쿠무라는 같은 해 2월까지 6년간 약 1,300회 걸쳐 9억 엔의 돈을 횡령하였고, 대부분의 돈을 10세 연하의 전직 택시운전사 야마가타 겐지(32세)에게 준 사건입니다.

     

     

    사건의 전말

    1. 1948년 시가은행에 입사 

    오쿠무라는 1930년 12월에 오사카에서 출생했습니다. 가족은 그 뒤에 교토로 이사하여, 오쿠무라는 1948년 3월에 사림호리카여고를 졸업합니다. 학제개혁이 있던 때라 오쿠무라는 고등학교 3학년으로 편입했지만 7월에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이유는 아버지가 내연녀와 함께 집을 나가버린 일로 남자를 불신하게 된 어머니가 남녀공학을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해 12월 오쿠무라는 시가은행 교토지점에 입사했습니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남자에게 지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으로 일에 매진했습니다. 

     

    2.1965년 야마가타 겐지를 만나다

    1965년 봄, 기타노지점에서 근무하고 있던 오쿠무라는 35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쯤 야마가타 겐지(25세)와 만나게 됩니다. 당시 오쿠무라는 사귀던 남자와 싸우고 냉랭해있던 시기라, 회사 회식 후 귀가하던 택시 안에서 울고 있었는데 그때 무슨 일이냐고 물었던 젊은 택시운전사가 야마기타였습니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오쿠무라가 "취해서 돌아가면 어머니가 잔소리할 테니 드라이브하자"라고 했습니다. 30분 정도 교토 시내를 달렸고 오쿠무라는 택시에서 내리며 "XX은행 오쿠무라 아키코예요"라고 다른 은행 이름을 말하고 떠났습니다. 그에게서 매력을 느껴서 다시 만나고 싶었지만 자신감이 부족해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3.1966년 봄 야마시나지점에서 근무하게 되다

    오쿠무라는 그 후, 야마시나지점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직무는 보통예금담당. 1966년 봄, 오쿠무라는 귀가하던 도중에 버스 안에서 야마기타와 재회합니다. 오쿠무라는 그를 완전히 잊고 있었지만 목소리를 듣고 다시 기억이 났습니다. 야마가타는 오쿠무라에게 차나 한잔 하자고 하며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야마가타는 말솜씨가 좋아서 오쿠무라는 그에게 풀 빠지게 됩니다. 정기예금 모집기간이기도 해서 오쿠무라는 "우리은행에 저축해 줘"라고 부탁하게 됩니다. 오쿠무라는 그날 이후 몇 번이나 야마가타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번번이 거절당합니다. 그런 태도에 오쿠무라는 더욱 적극적으로 변해갔고 두 사람은 몇 번 식사를 하면서 사귀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야마가타는 1940년 한국에서 태어났습니다. 7남 5녀의 다섯째로 아버지는 경찰이었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고 유리가게에서 살며 일을 하였습니다. 상업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지만 그때 친구에 꼬임에  넘어가 경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야마가타는 가수라는 꿈이  있어 코 성형수술을 하고, 노래찻집에서 노래를 하기도 했습니다. 세련되기도 하여 당연히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습니다. 유리가게에서 6년간 일을 한 뒤 야마가타는 독립하여 도자기 가게를 열었지만, 경정으로 가게를 날리고 택시운전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 매출의 납입금을 횡령하며 여러 회사를 옮겨 다니지만 쫓겨나게 됩니다. 오쿠무라와 버스에서 재회하게 된 것은 회사에서 쫓겨났던 때입니다.

    "경정할 돈이 필요하다" 야마가타가 이렇게 말한 건 사귀기 시작하자마자였습니다. 처음엔 5000엔, 1만 엔 정도를 빌려갔지만, 돈을 갚지 않았더라도 오쿠무라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요구는 계속 늘어가고 결국 자신과 가족을 위해 저축해 놓은 계좌를 깨야 할 정도였습니다. 야마가타는 그 돈으로 중고 배를 구입하게 됩니다. 오쿠무라는 그런 야마가타에게 애정을 멈추지 않았고 오쿠무라에게 있어서 야마가타는 이른바 마지막 남자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연하의 남자를 묶어두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습니다.

     

     

    4.1966년 가을 보통예금담당에서 정기예금담당으로 옮기다

    가을이 되어 오쿠무라는 보통예금담당에서 정기예금담당으로 옮기게 됩니다. 이 무렵 오쿠무라는 버스 회사를 정년퇴임한 K 씨라는 남자를 알게 됩니다. K 씨는 오쿠무라에게 노골적인 호의를 표시하였고, 오쿠무라가 정기예금 팸플릿을 보여주자 K 씨는 즉시 정기예금으로 100만 엔 수표를 보냈습니다. 오쿠무라가 정기예금의 증서와 인감을 주려고 했지만, K 씨는 받지 않고 맡겨두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오쿠무라가 야마가타에게 말하자, 야마가타는 그 돈을 빌려달라고 하지만 오쿠무라는 단호히 거절합니다. 포기 못한 야마가타는 드라이브를 하면서 잠시 들린 중고차가게에서도 차를 살려고 하는데 돈을 빌려달라고 또 요구합니다. 결국 오쿠무라는 거절을 못하고 11월 8일 K 씨의 정기예금을 위조증서로 중도해지하고, 100만 엔을 인출합니다. K 씨의 정기예금은 6개월짜리였지만 야마가타는 빌린 돈을 갚을 기미가 전혀 없자 다급해진 오쿠무라는 재촉했지만 돌아오는 건 경정으로 크게 한방 해서 돌려줄게라는 기약 없는 야마가타의 대답이었습니다. 

    그해 말, K 씨는 은행을 방문하여 오쿠무라에게 70만 엔 수표를 또 맡깁니다. 그리고 증서는 또 맡겨둡니다. 오쿠무라는 K 씨에게 관심 있는 척을 하며 그 후에도 착착 예금을 받아두게 됩니다.

     

    5.1967년 K 씨와 관계를 맺다

    다음 해인 1967년 5월 오쿠무라는 K 씨와 육체적인 관계를 갖습니다. 정기예금을 중도해지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야마가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발끈했지만 그만두라고 하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K 씨는 총 1240만 엔의 돈을 오쿠무라에게 맡기게 됩니다.

     

    6.1968년 계속된 야마가타의 요구

    1968년 1월 변함없이 야마가타의 요구는 이어집니다. 시무식 날 야마가타는 은행에 전화를 걸어와 20만 엔을 요구했습니다. 이때에는 K 씨의 돈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돈을 더 뺄 곳도 없었습니다. 곤경에 처한 오쿠무라는 은행 돈에 손을 댈까 고민하기 시작하고 그때 자신이 맡고 있던 정기예금 전표에서 20만 엔 1년짜리를 발견하여 정기예금증서까지 위조하게 됩니다. 한번 금기를 깨면 죄의식도 흐려지는지 오쿠무라는 범행을 거듭 저지르게 됩니다. 수법도 대담해져 갑니다. 정기예금의 중도해약으로는 충당이 되지 않아 가상의 명의를 만들어서 100만 엔 단위로 인출하기 시작합니다. 

    1972년 10월에는 정기예금사무결제자까지 되면서 더 심해지게 됩니다.

     

     

    7.1973년 지명수배되어 잡히게 된다.

    1972년 2월 오쿠무라는 지점을 이동하게 됩니다.

    갑작스러운 이동 소식에 놀란 오쿠무라는 자신의 횡령이 들통나게 될까 두려워 시모노세키에 있던 야마가타에게 전화하여 수면제를 준비하라며 동반 자살을 하자고 합니다. 그녀에게로 온 야마가타는 몇 번이나 자살하자고 말하는 오쿠무라의 말은 듣지도 않고 그녀에게서 300만 엔을 받고 시모노세키로 돌아가버립니다. 오쿠무라는 두 번이나 시모노세키에 찾아가서 야마가타에게 숨겨달라고 애원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리고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자취를 감춰버립니다.

    2월 19일 마침내 구속영장이 나왔고 오쿠무라는 전국에 지명수배됩니다. 

    또 시모노세키에 있던 야마가타는 오쿠무라의 애인으로 언론에서 주목을 받는데, 일정한 직업도 없이 수입차, 모터보트를 몇 대나 가지고 있었고 호화저택에 살며 도박과 유흥으로 1000만 엔 이상을 쓰고 또 쓰는 것이 수상하게 보였고 그의 형과 부모도 갑자기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이상했던 탓입니다.

    10월 15일 야마가타는 장물수수용의자로 체포됩니다. 그리고 오쿠무라의 주소도 진술하게 됩니다. 10월 21일 시가현 경찰은 가명을 사용하며 오사카의 아파트에 숨어있던 오쿠무라를 마침내 체포합니다.

    피해액은 4억 8천만 엔으로 추정됐지만, 두 사람의 진술에 의해서 7억 엔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고 그 후 법원에서 인정한 금액은 8억 9400만 엔이었습니다. 오쿠무라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을 1300회에 걸쳐서 인출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야마가타는 1970년 5월에 다른 여성과 결혼하여 딸을 두고 있다는 것도 밝혀졌는데 오쿠무라가 그를 위해 한창 돈을 빼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8.1976년 판결이 내려지다

    1976년 6월 29일 오쿠무라에게 징역 8년, 야마가타에게는 징역 10년의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또 은행에 대한 배상으로는 오쿠무라는 1000만 엔 야마가타에게는 3000만 엔을 지불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쿠무라는 와카야마여자교도소에 복역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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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제목이 종이달인가

    단어 자체로 '종이로 만든 가짜 달'이란 의미지만, 일본에서는 필름카메라가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사진관에서는 초승달 모양의 가짜 달을 만들거나 그려서 그것을 갖다 놓고 사진을 찍었던 것이 유행이었고 그 사진을 찍은 사람들이 대부분 행복한 가족과 또 연인과의 한때를 기억하는 상징물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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